인물, 사회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구원파

+×÷= 2020.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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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및 구원파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및 구원파를 이해할 것입니다.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및 구원파 가 궁금하시다면 끝까지 읽어주세요. 이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및 구원파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구원파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1987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위치했던 (주)오대양 공장에서 일어났던 집단 자살 사건을 말합니다.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라는 인물이 오대양이라는 종교단체와 기업을 만들면서부터 시작 됩니다.

 

박순자는 신학교를 다니다 여호와의 증인에 입문하였다가 구원파에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원파에서 자신을 추종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 1984년 5월 대전에서 종말론을 따르는 사이비 공교 겸 회사를 차렸는데 이것이 바로 '오대양'이라고 합니다.

오대양은 고아원과 양로원 유치원 등을 임대하거나 사들여 사회사업을 하는 듯이 보이게끔 꾸몄지만 실제로는 신도들의 자녀들을 박순자만이 진짜 어머니라며 세뇌하였으며 심지어 부모를 찾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소리도 하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도들과 자녀들을 집단으로 생활하게 만들었고 적합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들을 통제하며 부부들에게는 각방을 요구하였고 금욕 생활을 강요하며 외출도 제한당했습니다.

교주 박순자는 1984년에 공예품 제조회사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수입품 판매장을 만들며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용인과 대전 등의 공장을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하였 습니다. 그러나 1986년 4월 당시 7억이라는 거액을 투자하여 전자제품을 만들려고 했으나 사기로 인해 사업이 실해했다고 합니다.

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교주 박순자는 신도들을 시켜 사채를 최대한 끌어모으라고 명하였고 신도들은 일가친척들은 물론 사채돈을 빌려 박순자에게 바쳤으며 이 돈들은 무려 170억 원에 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빌리기만 하고 갚지는 않고 있다 보니 채무자들의 독촉과 사채 이자는 쌓여만 갔고 채무자 중 이상배라는 사람이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기 위해 오대양 공장을 찾았다가 집단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에 오대양을 고발하며 다른 채권자들도 나서 사회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채 이자와 경찰과 언론의 압박으로 인해 궁지에 몰리자 교주 박순자는 특별히 사채를 가장 많이 끌어모아 준 열성 신도들과 자신의 가족을 포함 31명과 함께 오대양 용인 공장의 식당 천장에서 4일단 몸을 숨겼습니다.

 

오대양의 직원 중 한 명인 김 모 씨가 용인의 공장에 왔다가 내려 낮은 숙소의 천장을 발견하고 식당 쪽으로 갔다가 천장에서 죽어있는 32명을 발견하여 집단 변사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경찰의 부검 결과 독극물은 나오지 않았으나 하이드라민 이라는 신경 안정제 성분이 발견되었으며 교살이 실제 사인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경찰은 사망자들이 신경안정제와 멀미약을 먹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보았으며 경찰은 박순자가 공장장 이경수에게 자신의 교사를 지시하고 뒤이어 이경수를 비롯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교살시킨 뒤 박순자의 두 아들들이 철골 서까래에 줄을 매고 자살하고 마지막으로 이경수가 목을 메어 자살했다고 경찰은 결론 내렸습니다.

 

구원파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그리고 구원파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관련 구원파는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는데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찬종이 기자회견을 통해 박순자가 한대 몸담았던 구원파와 구원파 신도가 경영하던 모 회사가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원파가 사건에 개입 돼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은 교주 박순자가 실제로는 구원파를 떠나지 않았고 모종의 이유 때문에 구원파를 이탈한 척하였으며 그 후 오대양을 차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주 박순자가 구원파의 대전 지역 자금조달 책임자고 오대양은 외부의 돈을 끌어모으려는 구원파의 위장 계열사라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오대양 와 구원파 계열 사업체 간에 자금거래가 있었다는 내역이 일부 확인되며 의혹은 걷잡을 수 없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자금거래 내역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업관계로 송금한 정상적인 거래였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사건과 연관이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교주 박순자가 신도 들로부터 받아 챙긴 어마어마한 금액에 대한 관심이 몰렸으나 대부분 사채 이자를 갚기 위해 쓰인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요약

1.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 1987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위치했던 (주)오대양 공장에서 일어났던 집단 자살 사건을 말합니다.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의 발단은 박순자라는 인물이 오대양이라는 종교단체와 기업을 만들면서부터 시작됩니다.

 

2. 1986년 4월 당시 7억이라는 거액을 투자하여 전자제품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사기로 인해 사업이 실패, 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교주 박순자는 신도들을 시켜 사채를 최대한 끌어모으라고 명하였고 신도들은 일가친척들은 물론 사채돈을 빌려 박순자에게 바쳤으며 이 돈들은 무려 170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3. 오대양의 직원 중 한 명인 김 모 씨가 용인의 공장에 왔다가 내려 낮은 숙소의 천장을 발견하고 식당 쪽으로 갔다가 천장에서 죽어있는 32명을 발견하여 이들의 집단 변사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4. 경찰은 사망자들이 신경안정제와 멀미약을 먹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보았으며 경찰은 교주 박순자가 공장장 이경수에게 자신의 교사를 지시하고 뒤이어 이경수를 비롯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교살시킨 뒤 박순자의 두 아들들이 철골 서까래에 줄을 매고 자살하고 마지막으로 이경수가 목을 메어 자살했다고 경찰은 결론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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